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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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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무덤 - 허연 살고 싶을 때 바다에 갔고, 죽고 싶을 때도 바다에 갔다. 사라질세라 바다를 가방에 담아왔지만 돌아와 가방을 열면 언제나 바다는 없었다. 조개 무덤 - 허연
장마의 나날 - 허연 강물은 무심하게 이 지지부진한 보혹역을 지나쳐 갑니다. 강물에게 묻습니다. "사랑했던 거 맞죠?" "네"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네"
좌표평면의 사랑 - 허연 노래가 아니라 그래프다. 환각의 정도를 나타내는 그래프. 두 명의 상댓값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여주는 그래프. 머릿속에는 수식이 흐르지만 그래프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좌표평면의 사랑. 힘들게 찾아온 사랑이라고 힘들게 가라는 법은 없다. 아무리 어렵게 온 사랑도 그래프 위에선 명료하다. 정점에 선 순간 소실점까지 내리꽂는 자멸.
천호동 장마7 - 허연 반지하 방에서 기침을 하던 너의 슬픔을 가져오지 못한 게 아주 오래 아프다.
오십 미터 - 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전두엽은 너를 복원해낸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무슨 수로 그 그림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지만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