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손을 씻었다
시간을 부순 공구가 철로 된 연장은 아니겠지만
마음을 망치는 것들은 피 냄새가 나니까
시를 읽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
조명을 쬐고 있다
빛과 소리가 섞여 객석으로 넘친다
관객들이 말을 가두고
저녁에게 어둡고 차분한 길을 터주고
종일 무거웠던 목젖을 누르며
걸어 지나가는 목소리
면접관 앞에서 떨었던 오후에는
햇빛에 다른 빛이 들떠 번들거렸다
한참을 걷다가 간이화장실에 들어가
표정에 비누칠을 했다
웃음과 울음이 빠르게 점멸하는 얼굴을
세척하는 박수 소리
낭독자는 인사의 예절로 빛에 멀리를 헹군다
빛은
그다음의 빛을 견디기 위해 잘 섞어두려고 했는데
나는 수많은 질문을 놓치고 허튼 대답을 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들의 찬란 속에서
운명을 반사할 별자리의 모양을 찾으려다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가장 아끼던 빛깔을 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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