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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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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에 하나는 제발이라고 말하지 - 황병승 천장에 붙은 파리는 떨어지지도 않아 게다가 걷기까지 하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바닷가에 갔지 맨 처음 우리가 흔들렸던 곳 너는 없고 안녕 인사도 건네기 싫은 한 남자가 해변에 누워 딱딱 껌을 씹고 있네 너를 보러 갔다가 결국 울렁거리는 네 턱뼈만 보고 왔지 수족관 벽에 머리를 박아대는 갑오징어들 아프지도 않나봐 유리에 비치는 물결무늬가 자꾸만 갑오징어를 흔들어놓아서 흑색에 탄력이 붙으면 백색을 압도하지만 이제 우리가 꾸며대는 흑색은 반대편이고 왼손잡이의 오른손처럼 둔해 파리처럼 아무 데나 들러붙는 재주도 갑오징어의 탄력도 없으니 백색이 흑색을 잔뜩 먹고 백색이 모자라 밤새 우는 날들 매일매일의 악몽이 포도 알을 까듯 우리의 머리를 발라 놓을 때쯤 이마 위의 하늘은 활활 타고 우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메리제인 요코하마 -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러브 앤 개년 - 황병승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아침에도 만나도 낮에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너는 조금씩 모르게 될 거야.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만나고 새벽에도 만나고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고 밤과 낮 공원과 들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소리친다. 입 닥쳐 개년아 어째서라니 네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릴수록 너는 더 미친 듯이 사랑에 목말라해야 하고 이곳에 없는 나를 찾아 밤새도록 공원을 숲 속을 헤매게 될 거다. 우리가 아침에도 낮에도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사랑은 역시 그래야 하는 걸까. 나의 연인은 돌아선다. 어째서 나를 개년이라고 부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