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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소설 발췌

아가미 - 구병모


이내촌은 둘레길이 약 2킬로미터, 평균 수심 약 5미터에 이르는 이내호를 둘러싼 마을의 이름이다. 이내라는 이름처럼 멀리서 바라보아도 흐릿하고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맴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이고 싶지 않아?"
원하면 그렇게 되어도 할 말 없다거나 상관없다는, 가진 거라곤 남들과 다른 몸밖에 없는 곤이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그때 라이터에 간신히 불꽃이 일어났다.
"... 물론 죽이고 싶지."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 글자뿐인 이름을,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