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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개년 - 황병승

굿 이너프 2020. 6. 1. 23:55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아침에도 만나도 낮에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너는 조금씩 모르게 될 거야.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만나고 새벽에도 만나고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고 밤과 낮 공원과 들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소리친다. 입 닥쳐 개년아 어째서라니 네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릴수록 너는 더 미친 듯이 사랑에 목말라해야 하고 이곳에 없는 나를 찾아 밤새도록 공원을 숲 속을 헤매게 될 거다. 우리가 아침에도 낮에도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사랑은 역시 그래야 하는 걸까. 나의 연인은 돌아선다. 어째서 나를 개년이라고 부르는 네가 누구인지 너에게 개년이라고 불리는 내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무엇인지 너의 말처럼 영원히 모를 수도 어쩌면 조금 알게 될 수도 있을 거다. 모르는 거니까 우리들 언젠가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지갑을 훔쳐 과자와 홍차를 사 먹은 적이 있어. 이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된다면 우리를 개집에 넣고 혹독하게 매질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밤의 나는 너의 사랑을 받는 개년이다. 어쨌든 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니 네가 누구인지 나의 첫 번째 사랑이 어떻게 달아나고 마는지 똑똑히 알게 될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