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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끝나는 시 - 심보선

굿 이너프 2020. 8. 7. 23:13


안녕하세여, 어디가세여, 나 몰라라 도망가지 말아여,
우리 피시방에서 만났던가여, 아니, 전생이었던것 같네여,
어떻게 지내셨어여, 전 오늘 좀 슬퍼여, 사실 애인이랑 막 헤어졌어여,
육 개월 동안 밤마다 애무하던 그녀 다리가 의족인 줄 어제서야 알았어여,
뭘여, 제가 나쁜 놈이지여, 저 위 좀 보세여, 저놈의 달은,
누가 자기 자리 뺏어갈까 봐 낮부터 저러고 버티고 있네여, 참 유치하지여,
한 백 년 만인가여, 기억나세여, 당신의 아버지를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지여,
그냥 친근해서여, 전 호부호형 안 해여, 다 어머니라고 해여,
제 삶은 홍길동전과 오이디푸스 신화의 희극적 만남이지여, 도대체 누구냐고여,
몇 생 전이던가여, 우리 어느 심하게 게으런 나라의 국가대표 산책팀 소속이었자나여,
기억 안 나세여, 왜 저보고 사는게, 납치할 아이 하나 없는 세상의 유괴범처럼
황당하게 외롭다고 그랬자나여, 불어였던가여, 스페인어였던가여, 왜 R 발음에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우겨 넣은 듯한 언어로 말했자나여, 그렇지여, 첫번째 생 다음은 다 후렴구이지여,
신은 희로애락을 무한의 비전으로 믹싱하는 DJ 지여, 그렇지여,
우리 인간은 그 리듬에 맞춰 춤이나 출 따름이지여,
같이 커피나 한 잔 하실래여, 전 크림 안 넣어여, 하얀 게 뭉게뭉게 번져가는 걸 보고 있음 괜히 기분
나빠져여, 누구 기다리세여, 다행이군여, 요새는 뭐 하시나여, 전 요새 다시 쓰고 있어여,
사실은 아무거나 쓰고, 이거 시다, 그러고 있어여, 엊그제께는 이력서에 사진까지 붙이고,
이거 시다, 이거 이력서 아니다, 그랬지여, 취직은 몇 번의 후생에나 가능하다 여겨집니다여,
아, 제가 이상한 놈으로 보이나여, 님의 표정이 불편하다는 의사를 살짝 비춰주시네여,
그러세여, 붙잡지 않겠어여, 커피 값은 제가.... 아, 그래 주면 고맙지여,
안녕히 가세여,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여, 다음 생애 볼 수 있음 또 보지,
아님 말지,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