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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도끼의 시 - 손택수
굿 이너프
2020. 7. 5. 13:49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텅이 어쩐지 쓸쓸하다
가만히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는 매부리처럼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 쪽으로 가르면
갓 뜬 회처럼 파들파들 긴장을 하던 공기들, 저미는 날에 묻
어나던 생기들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부터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
꿈을 업으로 삼게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면 이얍 어깨 위로 그 옛날 천둥 기합 소리가 저
절로 터져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피시식 알아서 눈치껏 소리 죽인 기합 소리는 맥이 빠져 있기 마련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몸을 끼워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 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도끼는 갈고 갈아도 지워지지 않는 묵향을 그리워하며 기꺼
이 흙이 된다
뒷꿈치 굳은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
온몸이 근질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올려 지고 싶은 도끼